칙칙한 정치권에도 봄은 오려나?

정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칙칙해 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담론이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 대목쯤 되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의 관심과 엘리트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이슈가 너무나도 괴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생활정치니 뭐니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가?

이 부분이 오늘날 자본화된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의 발전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가 활력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또한 엘리트주의적 사고의 산물일 수 있기에 무척이나 논의가 꺼려지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헌법적 질서 또는 제도적 질서가 상정하고 있는 시스템의 중핵은 바로 정치적 담론이다. 정치적 담론이라는 것이 개개인들의 개별적인 정치적 의사를 통합하여 국가 공동체 운영에 반영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정치적 담론은 국가 운영에 반영할 것인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학도가 아니라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과 희망 사항이 제도 속에서 투영될 경우, 그 제도에 대해 더욱 열정을 갖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정치, 작금의 총선 정국은 너무나도 그러한 열정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정치꾼들의 잔치이다. 결국 정치적 의견의 대립이 긴장을 형성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담론은 그러한 긴장에 주목한다. 아무리 계파간 갈등이 치열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들끼리의 권력 배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사회 구성원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희망사항과는 거리가 먼 칙칙한 정치를 대면하게 된다.

현재의 야당들, 소위 개혁 및 진보세력들은 그들 특유의 활력과 열정을 잃어버린 듯하다. 민중 권력을 쟁취한다는 것이 과거 정치권들이 하던 칙칙한 정치를 본받으려는 것은 아니었을 진데, 결과적으로 그들이 하던 칙칙한 면모를 그대로 닮아간다. 아무리 소수자들을 방패막이로 삼으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열정은 다시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봄과 함께 맞이하는 총선 정국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인들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그저 칙칙함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될 뿐이다.

Posted by 정보꼬뮨

2008/03/25 00:35 2008/03/25 00:35

Trackback URL : http://infocommune.net/legisprudence/trackback/38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71 : 72 : ... 100 : Next »

블로그 이미지

입법학, 정보법학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개인 블로그입니다.

- 정보꼬뮨





Notices

Calendar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Site Stats

Total hits:
110049
Today:
17
Yesterday:
40
15명이 RSS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정보공유라이선스 2.0 : 영리금지'에 따라 본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올블로그 배너

믹시